Mayhem and Sodomy

우연하게 알아챈 것인데, Sodom의 “Obssesed by Cruelty” 를 듣다가 ‘Deathlike Silence’ 를 듣고, 그 Deathlike Silence Production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잘 알려진 사실이었겠지만, 항상 몇 발자국 늦게 알아채는 나로서는 새로 알게 된 사실인 셈이다. 하긴 Sodom은 스래쉬 밴드이기는 하지만 블랙메탈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밴드이기도 하다. 당장 Euronymous의 생전 인터뷰에서도 Sodom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자주 찾아볼 수 있고, 앨범 오프닝 송의 이름을 레이블명으로 했다고 생각하니 그 점은 아무래도 분명해 보인다. Fullmoon Prod. 와의 인터뷰에서 Euronymous가 이 앨범을 ‘Masterpiece of Black Stinking Metal’ 이라고 칭한 바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이 이름을 꽤 잘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레이블명들이 많지만 ‘Deathlike Silence’ 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시적인’ 레이블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 편이다. ‘silence’ 라는 단어를 음악 레이블 명칭으로 쓰는 것도 사실 역설적이고, – 블랙메탈을 굳이 ‘철학’ 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 블랙메탈을 음악뿐이 아니라 거의 사회적 현상, 또는 그 이상으로 생각했 ‘다는’ Euronymous의 입장에서는 – 이는 단순히 그 의미를 가진 용어뿐이 아니라, 일종의 내적 체험과 같은 메타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바타이유를 조악하게 참고). “모든 단어 중에, 그것은 가장 성도착적인, 아니면 가장 시적인 용어이다 ; 그것은 그 스스로의 죽음을 나타낸다.” (Georges Bataille, “Inner Experience”, State Univ. of New York Press. 중)

Sodom이라는 용어 자체도 의미 있다. 물론 이 단어는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에서 나온 것이다. 신은 소돔의 사람들에게 유황과 불을 내리어 심판하였고, 그 죄목 중에는 동성애까지 있었다고 한다. – 창세기 19장 24절-25절 참고. 그리고 Sodomy라는 용어는 특히, 레즈비언보다는 게이들의 경우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억지스럽지만, Euronymous는 – 블랙메탈러들이 게이를 싫어한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 이 ‘sodomy’ 를 사악한 행위로서 지지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Euronymous가 게이였다기보다는 일종의 사드적인 관점에서 이걸 바라봤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사드에게 ‘sodomy’ 는 종래의 규범을 초월하는 행위의 극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러고 보면 ‘War and Sodomy’ 는 부틀렉 이름일지언정 정말 잘 지어진 이름인 셈이다.

다만, 사드와는 달리, Euronymous가 ‘sodomy’ 를 일종의 무신론에 대한 증거로서 본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그를 사타니스트였다고 한다면 굳이 ‘무신론의 증거’ 를 그가 들이밀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가 무신론자였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나는 뿔 난 악마를, 인간화된 사탄을 믿는다. 내 생각에 다른 모든 형태의 사타니즘은 쓰레기다. 나는 몇몇 사람들이 세상에 영겁의 평화를 가져다 줄 나름의 이상적인 길을 제시하고, 그것을 사타니즘이라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타니즘은 종교에서 비롯한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니, 그의 이름을 오용하는 자들과 싸울 것이다. 사람들은 그 스스로를 믿도록, 개인주의자가 되도록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종교의 노예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Euronymous, 즉 Mayhem이 그렇게 기독교와 기존의 규범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sodomy’ 를 그 무기로 휘두를 때조차, 그는 분명하게 기독교와 그에서 비롯한 기독교적 규범을 승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Black Metal as Overturned Sadism

Supernal Music의 “Anti-Geldof Compilation”을 가장 잘 알려진 블랙메탈 컴필레이션이라고 하면 좀 많이 무리이겠지만, 이 컴필레이션이 NS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어 보이던 어느 레이블에 강력한 불온의 기운을 불어넣음은 물론, 블랙메탈 극우파들이 정치적 불온함과는 별개로 어쨌든 목소리만 큰 허풍선이 반사회주의자 취급을 받던 시절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할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취급받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당연히 Live Aid 시절에 나온 앨범은 아니지만, 2005년은 Live Aid의 연장선으로 후진국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행사로서 Live 8 페스티벌이 열린 해였고, 그러니 Supernal Music이 이 행사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았을지는 좀 뻔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식의 시각은 일찌기 1992년, Mayhem이 이미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Euronymous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의 삶에 대해서는 만족하는가? 뭔가를 바꾸고 싶다면, 어떤 것이 되겠는가?

꽤 괜찮다. 다만 가능하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원한다. 그럼 DSP는 큰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뮤직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렘에서 사치스럽게 살면서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 모습을 비디오로 지켜볼 것이다.

(중략)

당신이 세상의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모든 것을 냉전 이전 시대로 돌려놓을 것이고, 그런 뒤에 바이킹 시대와 중세기의 야만성을 뒤섞을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종교적이고 광신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블랙/데스메탈 무브먼트를 처음부터 다시 일으켜, 애초에 사악한 밴드들만이 존재했던 것처럼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많은 돈을 가질 것이다. 누군가는 굶어죽을지언정 말이다. 나는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죽을 것이다.


화자의 진의 여부를 떠나서 블랙메탈 하면서 돈 많이 벌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내비치는 이례적인 모습과 별도로 인상적인 것은, Euronymous가 마치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스너프 필름 보듯이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Euronymous의 저 발언의 진의를 이제 와서는 알 수 없겠지만, 이를 통해 그래도 명확히 엿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Euronymous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과 스스로의 거리를 확실히 두고 있다는 점이다.

Maurice Blanchot는 일찍이 이와 비슷한 인간의 유형에 대하여 설명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인물은 Marquis de Sade다.

무관심(apathy)은 절대자로서 선택된 자만이 가능할 부정의 정신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에너지의 근원이나 원리이기도 하다. Sade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 오늘날의 개인은 어떠한 힘을 표상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 신, 또는 이상이라고 불리는 유령들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한다. 이러한 힘의 소모를 통해 그는 그 잠재력을 탕진하게 되고, 더 곤란한 것은 그의 행동이 ‘약함’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가 타인들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 이는 그가 결국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다. 결국 그는 무의미한 에너지의 소모로 스스로를 약화시키고, 스스로가 약하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탕진하게 된다. 강한 자는 스스로가 고독한 존재임을 알면서 이를 받아들인다. 그는 타인들에게 의존하여 온 기존의 전통을 거부한다. 그는 동정, 감사, 사랑 등의 감정을 파괴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의 활력을 회복하고, 그러한 파괴를 통해 결국 진정한 에너지의 근원을 끌어내게 된다.

[Maurice Blanchot, “Lautreamont and Sade” 중]

그런 의미에서 블랙메탈의 시작은 엽색행각만을 걷어냈을 뿐 어느 정도는 저 ‘부정의 정신’ 형태의 사디즘에 빚지고 있으며, 반기독교나 범유럽주의나 북유럽 민족주의나, 어떠한 사조나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형태로 내놓더라도 이는 동일해 보인다. 하지만 사디즘의 구현으로 블랙메탈을 표현하는 것은 Blanhot에 의하면 강자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디프레시브 블랙메탈을 위시한 오늘날의 많은 블랙메탈 ‘스타일’들은 전복된 사디즘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Black Metal Horde

많은 경우에 블랙메탈에서 ‘horde’ 라는 단어는 ‘밴드’ 라는 용어 대신에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용어의 본래적 의미에 따른 것은 아닐 것이다. 원맨 밴드의 경우에도 ‘hordes’ 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용어가, 더 많은 경우, 폭력성/야만성 내지는 남성성의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쉬이 알 수 있을 일이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운 점은 언제부터 이 ‘씬’ 에 속해 있는 친구들이 자기들을 ‘horde’ 라고 칭하게 되었는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horde’ 가 이런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이 또한 불확실할 것이다. ‘horde’ 는 본래 터키어 단어로, 왕이 거주하는 곳, 또는 천막(유목 민족의 용어라고 생각하면 이해될 것이다)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칭기즈 칸의 원정이 이 단어를 서구에도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horde’ 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을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용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명확하다. 폭력성/야만성의 메타포로 사용될 정도로 동적인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유목 민족의 모습으로는 이례적일 정지, 또는 정주의 이미지는 이보다는 훨씬 정적인 것이다.

darwin그러다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19세기, Darwin은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에서 ‘horde’ 를 원시인들의 집단과, 그보다 좀 더 원숭이에 가까웠을 인류의 선조를 가리키면서 사용한다. 문명의 발흥지가 어디였건, 모든 문명이 유래하였을 그들의 원시적 집단은 자연 선택의 결과였다는 것이 아마 책의 요지일 것이다(책을 본 지가 좀 오래 됐다). 물론 이에, 또한 잘 알려진 성선택의 결과가 더해지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진화론과 자연 선택의 진위는 많이 논쟁되는 문제인 것 같다(특히 종교계와 관련하여). 어쨌든, 이러한 이야기가 타당성의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인간성의 탄생에 대한 하나의 신화로서 작용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신화 속의 ‘horde’ 가 보여주는 폭력성은 명확하다.

Freud는 이러한 Darwin의 텍스트를 “토템과 터부(Totem und Tabu)” 에서 인용하면서 그 나름의 신화 풀이를 계속한다.

“…우리가 Darwin의 원시 부족(primal horde)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여성을 스스로 지켜내고 그들의 아들들이 자라날 때까지 뒤로 물러나 있도록 하는 폭력적이면서도 질투심 많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추방된 형제들이 다시 나타나 그들의 아버지를 죽이면서 이러한 가부장적인 부족은 그 끝을 맺게 된다. 서로 단결하여 그들은 그들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하게 될 용기를 얻게 된다(아마 어떠한 문화적 진보, 신무기의 발명이 그들에게 더 강한 힘을 주었을 것이다). 식인종은 그들이 그들의 희생자를 죽임과 동시에 잡아먹었다고 보아야만 설명될 수 있다. 폭력적인 원시적 아버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 형제들 개개인에게는 공포와 시기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그를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성취하고, 그 각각은 아버지의 힘의 일부를 이어받게 된다. 아마 인류의 가장 최초의 축제 중 하나였을 이 ‘토템적 식사’ 는 이 인상적이고 폭력적인, 많은 것의 시작이 되었을 행위의 반복이자 기념이었다.”

Freud에게 즉, ‘horde’ 는 폭력과 범죄에 기반하여 형성된 집단이었던 셈이다.

dawnoftheblackheartsDeleuze/Guattari의 “천 개의 고원” 에도 이러한 모습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토인비와 Frued의 저작에 힘입었을 이 두 철학자는 ‘노마드적인’ 삶의 사회철학적 의미를 도시국가에서의 삶과 비교한다. 계급적이며 동질적이고, 전체주의적인(“수목형의”) 집단으로 도시국가가 특징지어진다면, 노마드는 더 자유로운 구성의, 이질적인(“리좀적인”) 집단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horde’ 는 다시 서구 문화의 폐해를 치유할 수 있을 폭력적인 힘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블랙메탈은 이미 잘 알려진 요절한 이들(이를테면, Dead)에 대한 카니발리즘인가? 진위를 알 순 없지만, Dead의 뇌 조각을 Euronymous가 먹고 그 두개골 조각으로 목걸이를 만들었다는 (꽤 잘 알려진)루머는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데가 있다. 어쨌든 90년대 초창기의, 가장 ‘사악했고, 똘기 충만했던’ 노르웨이 블랙메탈 씬의 많은 ‘horde’ 들의 모습은 그렇다면 꽤 이해가 가는 편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단어에 스며 있는 폭력성은 (그 사용자의 태도를 떠나서)블랙메탈을 특징짓는 하나의 모습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Critic for Burzum’s Ambient

272f043852483db007초기의 거친 음악을 연주했던 Burzum이 본격적으로 ‘앰비언트’ 의 색깔을 비치기 시작했던 것은 아무래도 1994년의 “Hvis Lyset Tar Oss” 앨범부터일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은 블랙메탈 앨범이지만 앨범에는 아마도 Burzum 최초의 앰비언트 트랙일 ‘Tomhet’ 이 수록되어 있었다. 1994년에 나왔다는 것 때문에 사실 음악을 들어 보면 전혀 상관없는 스타일이지만 바로 이 ‘앰비언트’ 는 같은 해에 나왔던 Aphex Twin의 “Ambient Works Volume II” 와 은근히 비교되었던 것을 생각보다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둘 다 앰비언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점만큼은 동일하겠지만, Aphex Twin과 Burzum이라는 두 이름 사이에 놓인 간극은 ‘다들 아시다시피’ 메워지기가 쉽지 않다(심지어 커버는 Aphex Twin이 더 괴악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Tomhet’ 이 서양 앰비언트 뮤직의 전통에서 비껴나가 있다고 볼 만한 건 아니었다. 사실, ‘Tomhet’ 은 1970년대 크라우트록 거물들의 앰비언트, 즉, Tangerine Dream이나 Klaus Schluze 같은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Filosofem” 에서 25분짜리 앰비언트를 수록하는 시도가 있었던 뒤에, Burzum은 잘 알려진 바대로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던)두 장의 앰비언트 앨범을 발표했다.

하필 이 두 장의 앨범이 Euronymous 사후에 발표되었고, 생전에(친하던 시절에) Varg의 음악적 ‘멘토’ 를 자처했던 Euronymous가 크라우트록 씬의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라면야 Euronymous가 베를린에 갈 기회가 있었을 때 (이제는 고인이 된)Conrad Schnitzler를 찾아가 Mayhem의 앨범에 실을 곡을 달라고 했던 것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Conrad는 정말 곡을 주었고, 바로 그게 “Deathcrush” 에 실렸던 ‘Silverster Anfang’ 이었다. 이 자의식 강하던 뮤지션들이 앨범을 만들면서 정작 그 인트로를 다른 뮤지션의 곡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Burzum의 ‘앰비언트’ 작곡은 사실은 Euronymous, 더 올라가면 크라우트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렇지만 사실 Burzum의 ‘앰비언트’ 시기는 개인적으로는 Burzum 음악의 가장 취약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앰비언트에서 다시 벗어난 지금이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내가 Klaus Schulze와 Tangerine Dream의 음악 중 많은 부분을 그리 즐기지 않는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의식 강하기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뮤지션인 Varg가 자신의 색깔이 아닌, 오로지 남의 색깔을 비추어 내는 음악을 했던 것이 그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Filosofem” 까지의 Burzum은 간혹 앰비언트로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블랙메탈 밴드였고, Burzum의 블랙메탈이 매우 독창적이었으며 후대에 어떠한 ‘장르’ 를 형성한 스타일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Burzum의 그 싸구려 키보드로 연주했을 앰비언트(앨범이 들려주는 사운드의 퀄리티도 그렇거니와, 감옥에서 앨범을 만들면서 얼마나 좋은 장비를 쓰기를 기대할 것인가?)가 보여줬을 영향력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미 80년대에 등장한 많은 유럽의 전자음악 거물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전자음악을 얘기하면서 Varg Vikernes를 얘기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241C3F3452483E3435.jpg그리고, 명확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운드의 ‘발명’ 내지는 ‘실험’ 에 중점을 두었던 크라우트록 뮤지션들에 비해 Varg의 음악에서는 사운드가 가져오는 명징한 ‘분위기’ 는 있을지언정 새로운 음향의 이용 등의 측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잘 알려져 있듯이 Varg가 갑자기 블랙메탈에서 앰비언트로 음악을 전환한 동기는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 블랙메탈 또한 일종의 록 음악으로서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Varg가 ‘블랙메탈’ 을 그만둔 동기는 있었어도 사실 ‘앰비언트’ 를 선택한 동기는 별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Burzum이 그 전의 앨범에서 앰비언트적 요소를 조금씩 보여 준 적이 있었어도, 이후의 본격 앰비언트 앨범이 이전의 앨범들과 음악적 연속성을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억지스러운 표현이겠지만, Varg에 난자당해 죽었던 Euronymous는 정작 은연중에 자신이 Varg에 미쳤던 음악적 영향력을 통해서 나름의 복수를 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