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꽤 유명한 래퍼라는 저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라는 소개문구와 꽤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다가 저자가 그동안 쓴 칼럼들의 제목을 늘어놓아 만들었다는 난삽한 표지 디자인으로 기껏 모았던 시선을 단숨에 흩어버리는 모습이 돋보이는 이 책은 저자의 약력과 소개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랩이나 힙합과는 별 상관없는(바꿔 말하면 굳이 랩이나 힙합을 갖다쓰지 않더라도 책을 풀어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류의 책이라면 Suede의 Brett Anderson이 데뷔 전 거지같았던 유년기를 회상하며 내놓은 “칠흑 같은 아침”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인종의 차이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둘 다 하위계층으로서 팍팍한 인생을 살다가 나름의 성공의 맛을 본 이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멜로디메이커 기질이나 문학성을 무슨 음악을 듣고 무슨 글을 읽었다는 식으로 어쨌든 풀어내는 “칠흑 같은 아침”에 비해 더욱 음악 얘기를 쫙 뺀 이 책은 스코틀랜드 흑인 게토에서 자라난 저자가 풀어내는 가난에 대한 르포르타주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게토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타고난 능력의 고하와 무관하게 정신적 위축, 정신적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저자는 이러한 스트레스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발언권의 부재를 지적한다. 말하자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배제된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대개 실생활에서의 경험에서 비롯하는 만큼 꽤 타당해 보이는 이유를 동반한다. 심지어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마저 지역의 자활이 아니라 지역의 외부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면서 가난한 이들을 더욱 더 종속적인 위치로 몰아넣고, 결국 빈곤 지역은 계속해서 보존되는 일종의 사파리가 되는 것이다, 라는 게 책의 대략적인 결론이다.
그러니까 저자에게 랩은 결국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자기애를 회복하는 방법이었던 셈이고, 비행청소년들의 교화(내지는 재사회화) 수단으로 랩을 가르쳤다는 소개글의 토막은 덕분에 좀 다르게 읽힌다. 이걸 뜨고 나서 옛날 생각 못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는 식의 ‘스웨그’를 강조하는 많은 힙합 뮤지션(또는 뮤지션 호소인)들의 모습보다는 이런 모습이 더 진정성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금수저 물고 태어나 두꺼운 지갑을 내세우며 이걸 스웨그라고 덧붙이는 이들이 힙합 문외한의 눈에는 좀 많아 보였다. 그런 분들이 주변에 있다면 일독을 권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한 대 맞을까봐 안했다.
[대런 맥가비 저, 김영선 역, 돌베개]